"신명나는 굿 한 판 벌리고 나 갈란다!"
늙은 어머니는 오늘도 저승 갈 준비를 하신단다. 가기 전에 굿 한판 시원하게 벌려 달라 아들에게 또 떼를 쓴다.
연극 '오구'는 어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을 꾸고 굿 한판 벌려 달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구'는 '오구굿'의 준말로 죽은 사람이 생전에 풀지 못한 소원이나 원한을 풀어주고 죄업을 씻어 극락천도를 기원하는 굿이다.
징과 북을 치며 배우들이 무대에 와르르 들어서 굿판을 벌인다. 장고 치는 품새나, 배우들의 곡이나 몸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굿에는 본디 연희적인 요소가 있다. 객석에서는 절로 웃음과 박수 그리고 실제 굿처럼 '돈'이 나온다. 객석 사이로 돈을 걷으러 다니는 소리무녀들에게 관객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본인의 삼재(三災)를 씻어내고 싶은 관객은 필히 지폐를 챙기시라.
죽음을 앞둔 늙은 어머니의 저승길을 위해 자식들이 벌이는 굿판이지만 끊임없이 웃음만 나온다. "나 갈란다! 나 갈란다!" 두 마디 외치고 저승길로 훅하니 가버리는 어머니. 초상집에서 벌어지는 화투판. 저승사자에게 노잣돈을 떼어먹으려는 둘째아들. 연극 '오구'는 죽음이 주는 슬픔과 공포를 춤과 노래 그리고 웃음으로 풀어낸다. 해학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작품이다.
'오구'는 강부자(노모)와 오달수(박수무당 석출)콤비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초연 당시 소극장 무대에 섰던 건 남미정이었다. 스무두살이란 젊은 나이에 팔순 노모를 능청스럽게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30여 년 동안 오구의 노모를 지켜온 남미정이 이번 무대에서 한 층 더 개구져진 연기를 선보인다. 또 연희단거리패 배우 김미숙이 그동안 인간문화재 하용부 선생이 해오던 무당 '석출'을 이어받아 새로운 '석출'로 관객과 만난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도 소리 무녀 역으로 구슬픈 곡조를 뽑아낸다. 이 걸출한 세 여배우들을 '오구'가 한 자리에 모았다.
IMF 외환위기 때도 오히려 관객이 증가하는 기현상으로 '귀신 붙은 연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서울 무대에 오르는 건 7년만이다. 이번 공연도 매진행렬이다. 그동안 '오구'는 강부자 주연으로 대극장에서 계속 공연되어왔지만 이번에는 다시 초연 때의 소극장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굿의 신명나는 분위기가 한껏 산다. 이웃 집 앞마당에서 벌어진 굿판에 초대 받은 느낌이랄까.
작·연출을 맡은 이윤택은 "굿이 바로 우리 연극의 원형이다"고 말한다. 굿을 연극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애초 '굿'이 연극이었다. '오구'는 1989년 초연된 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500여회 공연을 하며 27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연희단거리패는 30스튜디오에서 '굿과 연극' 기획전으로 한 해를 열며, '씻금', '오구' 그리고 '초혼'을 차례로 선 보인다. '오구
앞서, 이윤택 연출가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로 우리 문화 예술의 원형인 굿이 혹세무민의 수단으로 오해받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시리즈를 기획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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