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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디케(Dike)'와 '장석지(張釋之)'

기사입력 2018-07-20 10:00 l 최종수정 2018-07-24 09:37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219번지, 바로 요즘 한여름 폭염 보다 더 핫(Hot)한 곳, 대법원이 있는 주소입니다.
대법원의 대법정 입구에는 먼저 만나게 되는 한 조각상은 정의의 여신 '디케(Dike)'로 왼손에는 엄격한 법 집행을 상징하는 원래의 칼 대신 법전을, 오른손에는 공명정대함을 상징하는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정의가 훼손된 곳에 재앙을 내린다' 그녀의 딴 이름인 유스티치아(Justitia :로마신화)에서 영어 Justice(법, 질서, 정의)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최근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직 시절 '디케'의 상징처럼 '사법정의'를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랬던 그를 아는 선후배 법관들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반대파 뒷조사를 하고. 재판거래까지 시도했다는 의혹에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 결국 문패 못 단 숙원이었던 '상고법원'

양승태 대법원의 최대 현안은 바로 상고법원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재판이 몰려들면서 대법원 판결 속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자, 양승태 사법부는 대법관 숫자를 늘리기로 했지만, 쉽지 않자 상고법원을 별도로 설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당시에 법원행정처가 주관하는 행사에서는 '상고법원'을 주문처럼 외치는 건배사가 늘상 올라왔습니다.

"유비가 형주를 얻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근간을 세웠는데, 이제 양승태 대법원이 강한 형주를 얻었으니 숙원이던 상고법원이 눈 앞에 오게 됐군요."

법원행정처 상견례 자리에서 신임 차장의 이름을 빗대어 상고법원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 건배사였는데, 당시에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생각해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던 겁니다.
삼국을 통일한 건 유비의 촉나라가 아니라 조조의 위나라였다는 사실을,
결국 그리도 원했던 것이건만 상고법원은 끝내 문패를 달지 못했습니다.

■ 장석지 "법은 천자가 백성과 함께 하는 공공(公共)의 것"

이번 사태를 보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공평한 법을 집행한 것으로 유명한 장석지(張釋之)의 판결이 떠오릅니다.

한문제(漢文帝) 때의 정위(廷尉), 즉 형관(刑官)을 지낸 장석지는 임금 행차에 백성 하나가 다리 밑에서 불쑥 튀어나오면서 말이 놀라 한문제가 크게 다칠 뻔 했는데 벌금형만 내리고 끝냈습니다.
한문제가 화를 내자, 장석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법은 천자가 천하 백성과 함께하는 공공(公共)의 것입니다. 더 무겁게 적용하면 백성이 법을 믿지 않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그를 베셨으면 몰라도, 제게 맡기셨으니 저울에 달 뿐입니다."

법 적용에 있어 확고한 원칙 아래 임금과 백성을 공평히 대한 것입니다.

법원에서 공개된 410개 문건을 보면, 원세훈 재판이나 KTX 여승무원 사건, 통상임금 사건, 과거사 재심에 대한 긴급조치 사건 등에 대해 청와대에 거래를 제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고목 소리 들으려면'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 소리 들으려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매 맞은 자국들도 남아 있어야

지난해 9월 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퇴임사 말미에 인용한 '고목 소리 들으려면'(오현 스님)이라는 시 구절입니다.
서슬퍼런 유신 시절에 판사가 돼 42년간 법관으로 살아 오면서 겪었을 풍상 속에서 그가 느꼈을 소회를 '고목'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통해 "재판 거래는 상상할 수 없고 재판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조만간 관련 의혹에 대한 실체가 나올 것입니다.

'디케(Dike)'의 저울과 법전, '장석지(張釋之)'의 소신있는 판결을 평생 신조로 삼았던 그가 자신의 말대로 고목으로 남으려면 아픔이 있더라도 분명한 진실을 먼저 밝

혀야 합니다.

[ 김건훈 기자 / k101677@naver.com ]


◆ 김건훈 기자는?
=> 현재 대법원 출입기자
1997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주로 사회부 취재를 담당하며 사건팀장과 법조팀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사회 정의'를 제1의 신조로 생각하며 항상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선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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