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이 결국 침출수 유출사태로 비화했다. '빨리빨리' 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지자체가 매몰지 마련도 제대로 못한채 살처분을 강행한 탓에 수만 마리 돼지 사체가 쌓인 곳에서 핏물 등이 임진강으로 일부 흘러들어가는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침출수는 인근 하천으로 유입돼 상수원 오염 등 2차 피해 우려까지 낳고 있다. 파주시에서는 12일부터 취수 중단에 나서 오염 우려는 주변 지자체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12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 10일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돼지열병 매몰지(군부대 유휴지) 인근에 쌓아둔 돼지 4만7000여마리의 사체에서 핏물 등이 새어 나와 인근 임진강 지류 마거천으로 유입됐다. 경기도와 연천군은 펌프 등 장비를 동원해 침출수를 걷어내긴 했지만 일부는 이미 지류를 타고 임진강으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가 난 매몰지는 임진강 본류와는 16㎞, 임진강 상류 상수원과는 직선거리로 8㎞ 가량 떨어져 있다. 연천군은 상수원 오염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시료를 채취해 수질 검사를 진행 중이다. 경기도와 연천군은 상수원과 거리가 멀고 이미 살처분 과정에 돼지 사체를 소독 처리했기 때문에 인체에는 무해하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실제 파주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12일 금파취수장의 취수를 중단해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파주시는 침출수의 일부가 오는 13일 임진강으로 유입될 것으로 파악하고 12일 오전 10시부터 파주 북부지역에 공급되는 수원을 팔당 광역 상수도로 대체해 공급하기로 했다. 또 운정, 교하, 조리, 금촌을 제외한 파주 북부지역 마을 방송과 아파트 방송 등을 통해 이 같은 조치상황을 전파했다.
이번 침출수 유출은 지자체가 매립 용기를 확보하지 못한 채 농림산식품부가 제시한 시한에 맞춰 무리하게 살처분을 진행한 게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기도와 연천군은 농식품부 방침에 따라 지난 달 12일부터 연천지역 돼지 19만마리에 대한 수매 및 도태 처리작업을 진행했다. 도태 처리 대상인 16만 마리는 랜더링(사체를 고온멸균한 뒤 기름 성분을 재활용하고 잔존물을 퇴비·사료 등으로 활용) 처리하거나, 살처분한 뒤 플라스틱 재질의 매몰 용기(FRP)에 담아 매몰하는 방식이다. 연천군은 매몰지 확보가 여의치 않자 랜더링 위주로 작업을 하다가 농식품부의 독촉을 받고 급하게 살처분을 진행했다. 농식품부는 연천군에 10일까지 살처분을 완료해 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사체 매몰 용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처분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연천군 관계자는 "용기가 제작된 상태에서 살처분한 뒤 용기에 담아 매몰해야 하지만 용기 제작과 살처분이 동시에 진행됐다"면서 "용기 없이 매몰이 불가능한 탓에 사체를 매몰지 주변에 쌓아둘 수 밖에 없었고 침출수 유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농식품부 등 당국이 매몰지 확보를 위한 협조 요청에도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변에 매몰지가 있으면 향후 재입식을 할 때 제약이 있어 양돈 농가들의 반대가 심해 농식품부와 국방부 등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진전이 없었다"며 "최근에서야 군부대 유휴지(현 매몰지)에 대한 사용 승인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매몰을 하지 못했더라도 바닥에 튼튼한 비닐을 깔고 가벽을 쳐서 침출수 유출을 임시로라도 막을 수 있을텐데 그런 조치도 하지 않은 채 돼지 사체를 쌓아뒀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시간에 쫓긴 살처분으로 사체 손상이 심해져 침출수 유출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 상 살처분은 매립 전에 전살법, 타격법, 가스법, 약물 사용법 등으로 진행하도록 돼 있다. 연천군의 경우 가스법을 이용했다. 살처분 직후 사체에서 침출수가 유출되는 경우는 드문 만큼 이번 경우는 사체 부패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다른 지차체 방역담당 관계자는 "매몰 후 사체가 부패되면 침출수가 어느 정도 유출되기 마련"이라며 "연천 사고에선 살처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천까지 유입될 정도로 핏물이 흘러나왔다는 건 사체가 심하게 손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살처분 작업 전반이 허술하게 진행되면서 빚어진 사태"라며 "무리한 살처분 과정에서 사체가 훼손되고 압력 등이 침출수 유출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천 사고를 계기로 예방적 살처분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재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10년 구제역 파동 당시 매몰지로 사용한 농가가 적지 않은데다 매몰지 옆에서 생활해 본 주민들이 악취 등을 이유로 농장내 매립을 반대하고 있어 매립지 확보가 갈수록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가축 감염병이 유행한다면 '매몰지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런 점에서 신속처리에 주안점을 둔 현행 돼지열병 매뉴얼 자체가 허술하다는 지적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구제역 발생 이후 전국에 6000여개의 매몰지가 만들어졌다. 이중 358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매몰지가 집중 관리대상(3년)에서 벗어났지만 축산 농가들은 한번 매몰지로 사용한 곳은 또 다시 매몰지로 활용할 수 없다는 거부감이 팽배해 있다. 특히 연천 돼지 농가 처럼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 한 경우 해당 농가들은 "내가 축
[연천 = 지홍구 기자 /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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