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도덕성 비공개' 중시하지만…국민 76% 반대
여당 때 제도 개선 촉구해도 야당 되면 모르쇠
여당 때 제도 개선 촉구해도 야당 되면 모르쇠
김부겸 국무총리과 임혜숙·박준영·노형욱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두고 벌어진 여야 새 지도부의 한판 대결이 일단락 됐습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겠다는 듯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당시 "국무위원에 대한 평가가 온당하고 정당하게 이뤄지면 좋겠다"며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능력 검증과 개인 문제를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인사청문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송 대표는 "야당이 반대하면 다음 정권부터 적용되는 단서를 달더라도 차제에 청문회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이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여당과 야당의 처지가 바뀔 때마다 인사청문제도에 대한 입장이 바뀌어 왔던 점을 고려하면 여야가 합의에 이뤄낼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정권 교체 가능성이 있는 정권 말기를 놓치면 또다시 논의가 몇 년 미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이 적기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與, 잇따라 개정안 발의…'도덕성 비공개' 핵심
민주당은 지난해 5월 말 21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로 3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46명은 지난해 6월 청문회를 공직윤리청문회-공직역량청문회로 분리하고, 윤리청문회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인사청문회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정성호 의원 등 12명도 같은 해 7월 공직후보자에 대한 비공개 사전 검증을 목적으로 하는 '예비심사소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고, 김병주 의원 등 12명은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에 한해서라도 역량 검증과 도덕 검증을 분리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모두 '도덕성 검증 비공개'를 골자로 한 법안들입니다. 본인은 물론 가족에 대한 지나친 흠집내기로 인해 능력 있는 사람들이 후보자가 되기조차 꺼리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처럼 '도덕성 검증 비공개'로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지만 여야가 합의를 이뤄내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하지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지금의 야당 탓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의 여당도 야당 시절에는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던 지난 2015년 2월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강도 높은 인사청문회로 국민이 가진 의혹을 규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 총리의 아들 병역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그런 부분은 우리 당이 제대로 따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집권 중이던 지난 2014년 6월 안대희·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자 "국정 수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여론이 반복된다"며 "국회가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를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지난 2005년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는 "그토록 시스템을 강조해 온 이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인사 시스템조차 작동되지 못했다"며 "한나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전 국무위원과 공정거래위원장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이처럼 어느 당이든 야당이 되면 인사청문회를 정권 공격의 수단으로 여겨온 것은 변함이 없었고, 이 점이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도덕성·정책능력 모두 검증해야" 의견 76%
이처럼 집권 중인 여권에서는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방향의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5월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도덕성은 비공개 검증, 정책 능력은 공개검증'하는 방식과 모두 공개하는 현재 방식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6%는 "후보자의 도덕성과 정책능력을 모두 공개 검증"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내용은 갤럽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반면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 정책 능력 검증은 공개" 방식을 선호하는 쪽은 19%에 그쳤고, 5%는 의견을 유보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모두 공개" 71%-"능력 검증만 공개" 23%와 비슷한 결과입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인사청문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논리를 쉽사리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권 말이 논의 적기…靑 검증체계 강화해야
때문에 아무리 민주당이 거대 여당일지라도 야당과의 합의 없이 인사청문제도를 손 보기는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정권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논의의 적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여야가) 서로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장담하고 있으니 다음 정부부터 적용한다는 조건 하에 인청 개선에 대한 열린 토론이 이뤄지면 좋겠다"며 "제도가 좋은 사람을 발탁하는 과정이 돼야지 좋은 사람을 내치는 과정이 혹시라도 안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권은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방안을 원하지만 국민 여론이 바뀌지 않는다면 또다른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당이 과거 발의했던 법안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2009년 4월 박병석 의원(현 국회의장)이 대표발의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보면 '공직후보자에 대한 사전조사 결
문 대통령도 "청와대의 검증이 완전할 수 없고, 그럴만한 기능과 인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차제에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 자체를 강화해 심도 있는 인사청문을 실시하면서도 국회에서 이번과 같은 지나친 정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백길종 기자 / 100road@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