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담배 금지된 이슬람 국가의 볼거리, 모스크
동남아의 아마존, ‘브루나이강 브루즈’
반다르세리베가완 유일의 야시장, 가동(Gadong)
브루나이에서 하루 이틀을 보내고 나면 금방 깨닫게 된다. 이곳이 ‘심심한 여행지’라는 사실을. 이슬람 율법에 입각한 브루나이의 독재정치 시스템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구조를 양산하고 여행자의 경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그 경험이 국가와 개인의 역할을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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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전경 |
브루나이 여정은 그야말로 비와의 싸움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여정 내내 거의 하루 종일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는, 예측 불가능한 날씨의 연속이다. 전 세계 기후변화의 여파가 이곳의 건기와 우기를 가르는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 변화를 몸소 경험하는 순간은 하나둘 늘어만 간다. 비가 그친, 2~3시간의 구름 상태를 즐기기 위해 브루나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모스크 산책에 나섰다.
이슬람교는 브루나이의 국교다. 2021년 기준, 브루나이 인구의 약 83%가 무슬림이다. 14세기부터 공식 종교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16세기에 이르러 브루나이는 이슬람교를 더욱 공고히 했고, 이슬람 구성 요소가 국가 법률에 통합되는 등 강력하고 숙련된 술탄국가로서 탄탄한 성장을 이뤄 현재에 이른다. 브루나이 전역에는 약 140개의 크고 작은 모스크와 기도당이 있다. 그중 반다르세리베가완에 있는 두 개의 모스크, 즉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Omar ‘Ali Saifuddien Mosque)와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Jame’ Asr Hassanil Bolkiah Mosque)가 술탄국의 명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배당이자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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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의 야간 전경 (우)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 입구 전경 |
심심한 여행의 볼거리, 왕실의 유물들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는 이웃한 나라지만 역사, 정치, 경제, 문화에서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두 나라 모두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독립 이후의 길이 완전히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정치 체제다. 다시 말해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말레이시아와 달리 브루나이는 전통적인 절대군주제로, 국왕이 국가의 전권을 행사하며 독재정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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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주변 공원에 설치된 BIBD 프레임 (아래)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기도실의 내부 모습 |
브루나이에서는 술과 담배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호텔에서 만난 독일 여행자는 브루나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니코틴 껌부터 챙겼다고 했다. 이를 더 많이 챙겨오지 않은 것에 후회한다는 말과 함께. 평소 담배는 물론 술도 그리 즐겨 하는 편은 아니지만 비까지 내려 후텁지근한 무더위에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고 싶은 간절함이 여정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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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아치형 구조의 유럽 건축 양식이 더해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오른쪽)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 내부 전경 |
브루나이의 역사적 골동품과 왕실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이곳은 브루나이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과 왕실 관습을 상징하는 장소다. 이곳은 1971년 처칠 기념관으로 완공되어 당시 윈스턴 처칠을 기념하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으로 사용돼 왔다. 이후 국왕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 9월 개조되어 지금의 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전시장은 1, 2층으로 나뉘며, 국왕의 어린 시절부터 대관식 이후까지의 이야기가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다. 또한 브루나이의 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어 정치 개혁에서부터 사회적 발전에 이르기까지 브루나이의 변화를 연대별로 기록한 자료가 박물관 한편에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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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고대와 현대 건축의 융합을 나타낸 로얄 레갈리아 박물관 (아래) 브루나이 국왕 하사날 볼키아의 초상화 |
며칠째 계속된 장대비의 영향으로 맹그로브숲을 포기할 뻔했다. 브루나이강을 따라 나 있는 맹그로브숲은 ‘동남아의 아마존’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숲의 면적은 최소 173㎢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이는 브루나이 전체 국토 면적의 약 3%에 해당한다. 해안선을 안정시켜 폭풍해일이나 해류, 파도, 조수로 인한 침식을 줄이는 기능을 하는 맹그로브숲은 육지와 바다, 대기 사이의 경계면에 서식하며 에너지와 물질 흐름의 중심을 이룬다. 또한 강물 아래 얽히고설킨 형태의 나무 뿌리는 포식자로부터 먹이를 제공하고 물고기에겐 훌륭한 피난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브루나이 술탄국은 한때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일부를 포함해 보르네오 전체를 지배했을 만큼 강력했다. 당시 강력한 국가 권력은 브루나이강으로부터 흘러 들어 연결되고 그렇게 세계로 뻗어 나갔다. 특히 브루나이강이 브루나이 역사와 유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는 14세기부터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주변을 둘러싼 울창한 정글로 인해 배를 이용한 운송 및 통신 수단이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것이다. 이 수로는 정글 환경을 통한 편리한 운송과 식량 공급을 제공하며 중국과 유럽의 상선이 정박했던 번화하고 중요한 해상 무역로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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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국왕의 대관식을 재현해 놓은 전시장 모습 (오른쪽) 왕실의 궁전 내부를 엿볼 수 있는 공간 |
기다란 나무배 혹은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유람선이 ‘브루나이강 크루즈’라는 대표적인 액티비티로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브루나이강 탐험의 핵심은 맹그로브숲을 살피고 그 주변에 서식하는 동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단, 동물이 관광객을 향해 얼굴을 내보인다는 조건 하에서. 2시간가량 이어진 나무배 여행은 ‘숲속의 숨은 동물 찾기’나 다름없었다. 특히 동물 중에서도 코주부원숭이, 여우원숭이 등 다양한 종의 원숭이가 이곳 일대에 서식하는데, 뱃사공의 서브 미션은 코주부원숭이 찾기 같았다.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관광객이 코주부원숭이를 지척에서 볼 수 있게 나무배를 조종하는 것이 뱃사공의 임무.
능숙한 솜씨로 노를 젓는 뱃사공을 따라 나무에 매달려 있는 코주부원숭이를 찾는 것은 예상 외로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거리에 있었다. 대다수의 원숭이가 나무의 높은 구간에 매달려 있다 보니 이들을 ‘지척’에서 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 뱃사공의 사탕발림에 살짝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 또한 브루나이강의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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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동남아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맹그로브숲 (오른쪽) 나무배를 타고 즐기는 브루나이강 크루즈 |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이동수단이 바로 그랩(Grab)택시다. 앱 하나로 택시는 물론 차량 호출, 음식 배달, 식료품 쇼핑 등을 할 수 있는데, 도심 어디든 저렴한 가격에 빠른 이동이 가능한 이 그랩택시의 편리함이 브루나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바로 폐쇄적인 사회구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산유국 국민들이라 택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이유다. 기름값 걱정이 없으니 국민당 자가용 보유율이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브루나이에서 택시 서비스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랩을 대신하는 다트(Dart) 앱이 있다. 이 앱을 이용해 택시와 음식 배달이 가능하다는 점은 그랩과 별반 차이가 없긴 하지만, 앱 시스템상 구조 자체가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어 위치 설정이나 메시지 전송 등을 할 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어쨌든 이용에 따른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다트 앱은 여행자에게 교통수단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긴 했다. 특히 현지인 택시기사와의 만남이 그러했다. 일단 여기엔 현지인들의 자연스러운 영어구사 능력이 한몫한다. 브루나이는 과거 영국의 보호국이었던 영향으로 유아교육부터 고등교육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영국 교육시스템에 기반한 공공교육을 현재까지도 체계화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어디를 가든지 현지인 택시기사를 통해 얻는 여행 팁은 알짜배기로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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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거리 천국으로 유명한 가동 시장. 약 160개의 노점이 가동시장을 구성한다. |
국가의 역할은 ‘성숙함’을 따른다
‘산유국’과 ‘사회기반시설’은 도통 혼용이 불가능한 단어 같다. 예전에 중동국가를 여행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시외버스나 기차 등 지역과 지역을 잇는 교통수단의 편리성이 산유국에서는 사회기반시설의 필수요소가 아니다. 국토의 최동단에서 최서단까지 고작 140km에 불과한, 영토가 매우 작은 브루나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데 자가용을 필수적으로 보유한 현지인이 아니고는 이 계산은 성립이 어렵다. 브루나이 여행의 끝자락, 서쪽의 맨 끝 지역인 쿠알라블라잇까지 이동해 말레이시아로 국경을 넘으려면 자가용을 대신할 이동수단이 필요했다. 어찌어찌 어렵사리 찾은 정보를 통해 알게 된 건 브루나이에도 시외버스가 있다는 사실. 그렇게 반다르세리베가완 도심의 버스정류장에서 일단 세리아행 버스를 잡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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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세리아행 미니 버스, 세리아 버스정류장의 낙후된 환경, 반다르세리베가완 도심 버스정류장. |
세리아 버스정류장에서 쿠알라블라잇행 버스로 갈아탄 뒤 새로운 노동자들과 함께 또다시 낡은 버스를 공유하며 달렸다. 산유국으로서 가진 브루나이의 부와 명성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사회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치 체제를 떠나 국가의 역할은 그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잘 사는 국가라고 해서 성숙한 국가로 간주되진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르네오섬 서부 여행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3호(25.04.01) 기사입니다]